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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자기 발등에 총 쏘면 공멸이다


중앙일보

김종윤 경제부장

미국, 진보·보수정권 관계없이 선거용 보호무역 횡포 위기는 기회, 혁신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 차별화해야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1월. 미국의 역대 행정부 중 가장 진보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쏠린 버락 오바마 정권이 임기를 시작했다.
구호는 분명했다.
‘미국산 제품을 사고(Buy America), 미국인을 고용하라(Hire America).’ 이 방향에 맞춰 의회는 그해 2월 ‘미국의 회복과 재투자법(경기부양법)’을 통과시켰다.
핵심 내용 중 하나가 고속도로, 교량 등 사회기반시설(SOC)을 건설할 때 반드시 미국산 철강을 쓰라는 것이다.
미국에 철강을 많이 수출하는 중국·유럽연합(EU)·캐나다 등이 반발한 건 당연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더 심화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자 조 바이든 부통령은 “완전한 자유무역주의자의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받아쳤다.
한때 보호무역의 상징이었던 중국의 총리가 각을 세우자 자유무역을 신봉한다는 미국의 부통령이 궤변을 늘어놓는 역설적인 장면이었다.
그로부터 10년. 이번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섰다.
극우적이면서 예측 불가능한 그는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에서 수입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 폭탄을 매겼다.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특정 수입품에 무역 제재를 할 수 있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내세워서다.
무역 전쟁은 이념 전쟁이 아니다.
국익이라는 가면으로 포장된 정치 놀음이다.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같은 목적을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유권자의 표다.
오바마는 지지 기반이던 US스틸 등 철강 노동조합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는 러스트벨트(미국 동북부의 쇠락한 공장지대) 유권자에게 구애해야 한다.
전쟁의 포성은 곧바로 들려왔다.
EU는 미국산 피넛 버터, 오렌지 주스 등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중국은 미국산 콩과 옥수수 등에 보복하는 걸 검토하고 있다.
전운이 감돈다.
선거 승리를 위해 국제무역 질서를 흔드는 건 무역 대국의 횡포다.
역사에서 실패가 증명됐는데도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한다.
1929년 대공황 때 미국은 스무트-홀리법을 제정했다.
수입 공산물에 최고 40%의 관세를 물렸다.
‘나만 살고 보자’였다.
유럽과 아시아도 맞섰다.
앞다퉈 관세를 올렸다.
보복이 보복을 불렀다.
3년 만에 세계 교역량은 25%나 축소됐다.
위기 때 선각자가 나오는 법이다.
보호무역 광풍이 불던 때 미국에서 코델 헐(1871~1955년)이 등장했다.
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그를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헐은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는 ‘물자가 국경을 건너지 못하면 군인이 건넌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쟁의 원인을 보호무역에서 찾았다.
헐은 곧바로 ‘상호무역협정법(The reciprocal trade agreement act)’ 제정을 주도했다.
이 법은 훗날 자유무역의 근간이 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협정(GATT) ’체제로 이어졌다.
자유무역이라는 새순은 보호무역이 판치던 한겨울 혹한을 뚫고 솟아났다.
미국이 보호무역으로 기울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 G20(주요 20개국)은 보호무역 금지에 합의했다.
대공황의 악몽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이 바탕에서 세계 각국은 재정지출 확대와 금융 완화로 위기의 파도에 맞설 수 있었다.
자유무역은 세계 경제를 지키는 방파제였다.
지금, 트럼프는 과거로 돌아가려 한다.
자기 발에 총을 쏘면 공멸이다.
트럼프가 발등에 총을 쏘기 전에 총을 내려놓게 해야 한다.
선각자 헐의 정신은 아직 살아 있다.
국제 공조가 절실하다.
자유 무역은 국민과 국가를 넘어 세계를 살찌운다.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아무리 높은 울타리를 쳤어도 소비자가 안 사고는 못 배길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위기는 기회다.
오로지 혁신만이 소비자의 반란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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