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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아이디어와 스토리 부재의 공존


한겨레

영화 <다운사이징>의 한 장면. 주인공 폴 사프라넥(맷 데이먼)은 몸을 축소하는 ‘다운사이징’ 기술을 이용해 ‘1억원이 120억원의 가치를 지니는’ 세계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과연 넉넉한 삶을 살게 될까?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겨레] 자원해 5인치로 작아진 사람들 이들이 ‘소인’의 삶을 택한 이유는 1억원이 120억원의 가치를 갖는 자본의 세계에서 살 수 있기 때문 알고보니 ‘인생역전’의 배경에는 인구과잉 해결 위한 과학계 노력 환경위기 등 주제 담을 만한 탄탄한 스토리 부재해 아쉬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 감별사 다운사이징 영화에서 아이디어가 전부는 아니다.
대개의 경우 아이디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는 눈길을 끈다.
눈길을 끌지 못하면 시작조차 안 되며, 시작조차 안 된다면 아무것도 안 될 것이므로 아이디어는 전부다.
이처럼 괴이쩍은 논리가 말이 되는 순간이 가끔 있다.
영화 <다운사이징>이 그렇다.
‘5인치’(=12.7㎝) 크기로 작아진 ‘마이크로 인간’(이하 소인)들이 정상 크기의 앱솔루트 보드카 주둥이에 초미니 수도꼭지를 꽂아 한 방울로 한 컵 능히 채워 마시는 장면의 주목성만으로도 <다운사이징>은 아이디어의 힘을 십분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굳이 ‘걸리버’부터 ‘앤트맨’까지 말을 않더라도, <다운사이징>이 그 핵심으로 도입하고 있는 소인과 소인국 아이디어는 전혀 새롭지 않다.
그것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기술 역시 그렇다.
인생역전을 꿈꾸며 작아진 사람들 그렇다면 <다운사이징>의 아이디어는 어떤 점이 다른 것인가. 핵심은 돈이다.
<다운사이징>은 일단 소인이 소인국에서 겪는 시공간적 체험의 흥미로움보다는 몸 크기의 축소를 통해 얻는 생활 경제적 변화, 즉 돈에 맞추고 있다.
요컨대 <다운사이징>의 차별성은 아이디어 자체보다는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적용했느냐에 있다.
이는 ‘12.7㎝로 작아지는 순간 돈 걱정은 끝났다!’라는 주최 쪽의 헤드카피를 통해서도 명명백백하게 천명되고 있는데, 6천만원에 대지 300평 저택을 살 수 있고, 택시요금 정도로 비행기의 일등석을 누리고, 단 몇백만원에 스포츠클럽 종신 회원권을 얻을 수 있고 등등, 몸 크기 축소로 가능해진 돈 판타지는 인생역전, 미생탈출 등이 적힌 거대 족자를 마음속에 걸어두고 사는 뭇 관객들의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다음의 이야기 전개로 모아진다.
‘1억원이 120억원의 가치를 지니는’ 그 세계로 들어가기로 결심한 주인공 폴 사프라넥(맷 데이먼)이 과연 어떠한 인생을 살게 될까. 계획대로 잘 먹고 잘살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소비위축과 경기둔화를 초래해 각종 산업에 타격을 입히고 있는’ 이기적 현실도피 집단에 불만을 품은 정상 사이즈의 사람들로부터 구둣발, 진공청소기 등 무시무시한 대량살상무기의 공격을 받을 것인가. 이 대목에서 영화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도입하고 있다.
①소인에 대한 정상 사이즈 인간의 공격(특히 물리적 공격)은 없다: 주인공은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기 전, 지나가던 남자로부터의 사소한 시비에 휩싸였을 뿐 대부분의 친구들로부터 축복을 받는다.
②주인공이 ‘다운사이징’ 된 후 소인과 정상 사이즈 인간들과의 교류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다루더라도 변호사 접견 한차례 정도다.
③소인국에 대해 엄격한 물리적 법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 상당히 신경 썼던 물방울의 표면장력 차이에 대한 묘사 같은 건 없다.
이를 통해 영화 연출에서 얻는 가장 큰 효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제작비 다운사이징이다.
이 원칙들 없이는 영화 <고질라>나 <퍼시픽림>에서 등장했던 거대 빌딩이 붕괴되는 장면 도입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물론 주인공이 다운사이징 된 후에도 크래커, 장미꽃송이, 보드카 병 등 서너개의 거대(=정상적인 사이즈) 소품들이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그저 소품으로서 농담의 소재로 이용됐을 뿐이다.
이것이 괴수나 거대 로봇이 등장해 뉴욕 번화가를 파괴하는 것보다는 훨씬 비용이 덜 드는 설정임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예고편에서 잔뜩 등장한 소인국 비주얼들은 대체 어디서 등장한 것인지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 거다.
이 소인국 장면들은 주인공이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기 전까지의 전반 45분가량에 몰아서 등장한다.
소인국 영화 특유의 각종 귀엽고 아기자기한 장면들이 집중돼 있다.
폴더형 대저택이 등장한 입주 설명회 장면(로라 던과 닐 패트릭 해리스가 반짝 출연했다)도 재미있었지만, 아무래도 하이라이트는 다운사이징 과정 자체를 묘사한 대목이 될 것이다.
물리적·과학적인 엄밀함은 대략 퉁 치고 넘기는 영화의 나머지 부분들과는 달리, 영화는 이 과정을 거의 사용설명서 수준으로 꼼꼼하게 묘사한다.
예컨대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기 전, 금니나 임플란트 등은 전부 빼야 한다(안 그러면 머리가 폭발한다), 전신의 털이란 털은 모두 밀어야 한다(왜 밀어야 하는지는 설명되지 않지만 아무튼 이로 인해 맷 데이먼과 크리스틴 위그의 헌신적 몸 개그를 볼 수 있다) 등. 이 과할 정도로 세밀한 하이라이트와 그 말미에 등장하는 소기의 반전을 끝으로 영화는 주인공 폴 사프라넥의 레저랜드 입주 이후의 얘기로 본격 넘어간다.
즉 에스에프(SF) 코미디의 덥수룩한 두발과 눈썹을 깔끔히 제거하고, 감독 겸 공동작가인 알렉산더 페인의 전문 분야라 할 ‘평범한 주인공이 평범하지 않은 동행과 함께하는 예측 불허의 여행, 그 끝에 찾아오는 모종의 깨달음’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무기를 초반 3분의 1 지점에서 과감하게 버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 <다운사이징>의 선택 자체는 무척 현명했다.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그것과 결합된 이야기의 단단함 없이는 물 먹은 휴지처럼 형체도 없이 가수 분해돼 버린다는 것은 이제껏 수많은 천재적 아이디어 영화들이 증명해오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관건은 결국 나머지 3분의 2인 1시간30분 동안 전개되는 이야기의 밀도, 그리고 그 통찰의 깊이와 설득력일 것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이 대목에서 <다운사이징>의 관람성은 대폭 다운사이징 된다.
사실상 이 영화의 최종 목적지는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확실히 천명되고 있다.
‘다운사이징’ 기술을 최초로 개발해낸 노르웨이 과학자들은 이 기술이 ‘과잉인구에 따른 인류멸종’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확실히 못 박고 있는 것이다.
착하고 바르지만, 지루한 이야기 더구나 이 영화의 주연배우는 다름 아닌 맷 데이먼이다.
“착하다고 해서 꼭 지루한 건 아니야.” “예를 들면요?” “맷 데이먼?”이라는 대사(영화 <어바웃 타임> 중)가 있을 정도의 평판을 보유한 그가 연기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체크셔츠 혹은 폴로셔츠에 배바지가 주종을 이루는 의상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듯 지극히 근면 성실하고도 올바른 캐릭터다.
그는 큰집과 여유로운 삶에 대한 로망을 품고 사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다운사이징=인생역전’을 감행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다운사이징 기술로 정치적 탄압을 자행하는 ‘제3세계’(구체적으로는 베트남) 출신의 인권운동가 겸 환경운동가이자 난민인 ‘녹 란 트란’(홍 차우)이라는 캐릭터를 만나게 된다.
선량한 주인공과 정치경제적 불평등+환경위기+인류멸종위기라는 거대한 테마의 결합. 이 강력한 분자결합에 의해 <다운사이징>의 나아갈 바는 거의 핸들에 강화콘크리트를 양생한 자동차처럼 굳건히 고정된다.
그리고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러운 설득력을 잃고 만다.
물론 <다운사이징>의 아이디어는 기발했다.
그를 통해 인류가 당면한 위기 극복을 위해 전세계 관객들에게 던지려는 메시지 역시 알알이 지당하다.
그에 힘을 얹으려는 듯 배우들의 연기도 헌신적이다.
후반에 등장하는 노르웨이 피오르의 풍광 또한 고요하고도 아름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똑같이 과잉인구를 소재로 삼았던 전혀 다른 영화 <인페르노>가 확인시켜줬던 교훈을 또 한번 확인시켜주는 데 머문다.
메시지의 무게에 눌려버린 인물들이 가지는 설득력은 12.7㎝보다도 더 작아질 수 있다는 해묵은 교훈을 말이다.
착하고 바른 영화라고 해서 꼭 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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